김종길 전 법무부 장관, DJ 임명으로 두 번 사망

2002 김종길, 전 법무부 장관.  중앙 사진

2002 김종길, 전 법무부 장관. 중앙 사진

김대중 정권 때 두 차례 법무부 장관을 역임 한 김종길 전 장관은 만성 질환으로 23 일 오전 7시 집을 떠났다. 84 세.

1937 년 전라남도 신안군에서 태어난 고 김정길 전 장관은 조선 대학교 부속 고등학교, 고려 대학교 정치 외교학과, 서울 대학교 법학 석사, 한양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법. 1963 년 제 2 차 사법 고 시험에 합격 한 후 1969 년 검사로 임명되어 25 년 동안 검사로 일했습니다. 1994 년 광주 고등학교에 머물렀다.

그는 1995 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하고있다. 김태중 전 법무부 장관이었던 김태중 전 법무부 장관이 아내의 오틀 로비 사건으로 16 일 만에 해임 된 후 1999 년 6 월 제 49 대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일했다. 2001 년 5 월까지.

김 전 법무부 장관은 박순용 검찰 총장의 후계자로 가장 유력한 검찰로 꼽히는 신승남 검사를 반대하며 DJ로 교체 된 것으로 유명하다. 신 대통령은 6 개월 만에 이용호의 문에서 동생이 체포 돼 결국 사임했기 때문이다.

그 후 잠시 한양 대학교 객원 교수로 재직하다가 2002 년 7 월 김홍업, 김홍걸, 최규의 문을 통해 김대중 총장의 정부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선, 그는 다시 법무부 장관 (53 대)에 취임했다. 그러나 같은 해 10 월 말 서울 중앙 지방 검찰청이 피의자의 폭행과 사망을 맡았고 당시 이명재 검찰 총장이 책임을지고 철수했다. 최근까지 한국 외국어 대학교 석좌 교수로 재직했다.

김 전 장관을 기억하는 한 후배는 자신이“친절하고 따뜻한 성격으로 후배들에게 보통 맏형이었던 덕장”이라고 회상했다.

김 전 장관은 법무부 장관으로서 교도소 (교도소, 구치소 등)를 수시로 방문하며, 교정 행정 발전에 가장 공헌 한 법무부 장관으로 기억된다. 황철규 (19 대 사법 연수원) 장인 국제 검찰 협회장 (고 검찰)

영안실은 삼성 서울 병원 장례식장 19 호실에 마련됐다. 출발지는 26 일 오전 6시입니다.

김민중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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