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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일 서울 시청 앞 서울 광장에 설치된 백기완 (통일 연구원장)과 함께 시민 향 회관에서 시민들이 애도를 표하고있다.

18 일 서울 시청 앞 서울 광장에 설치된 백기완 (통일 연구원장)과 함께 시민 향 회관에서 시민들이 애도를 표하고있다.

“2016 년 촛불 집회에서 선생님을 멀리서 봤습니다. 인민 운동의 위대한 선생 중 한 명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만나서 방문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영면을 방문한 지 4 일 만인 18 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 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이무열 (26) 씨. 이 나라에 대한 공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장례식을 찾은 시민들은 오랫동안 약자 편에서 강자들과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던 ‘백기완’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텅 빈 곳을 찾았다 고 모였다. 나이, 성별, 직업은 달랐지만 각자 기억했던 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애도를 전했다. 20 ~ 30 대 애도 손님은 길거리에서 ‘라이온 후’를 토하는 선생님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고했다. 아무개 박 (30) 씨는“대학생 시절 노동자회에서 선생님을 처음 봤는데 그때의 목소리와 발언을 잊을 수가 없다. “끝까지 변하지 않고 약자를 위해 평생을 살았던 고인의 모습을 정말 존경합니다.” 회사원 김한주 (30)도“강력한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르는 고인의 모습이 생각 난다. 이제 나머지 우리가 그 의지를 이어 받아야합니다.” 그들에게 선생님은 과거에 묶인 훈계 만 해주 던 ‘콘대’가 아니라 연기 한 ‘백발의 청년’인 것 같다. 빈소에는 어렸을 때 선생님의 말과 행동에 큰 영향을받은 중년들이 줄 지어 있었다. 회사원 창혁 (57) 씨는“1986 년 대동 축제 때 학생회 추천 강사로 선생님이 오셨던 말씀이 기억 난다. 그 이후로 존경하는 시민이지만 이제는 편히 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 대 딸과 함께 게토를 찾은 신정혜 (53) 씨는“개인적인 관계는 없지만 다니던 노동 대학에서 백남준의 연설을 깊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수년 동안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일관된 삶의 방향을 추구 한 사람에게 인사하고 싶었습니다.” 이날 정오 12 시부 터 서울 시청 앞 서울 광장에도 시민 향 센터가 설치되면서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향 회관 내부 사진에 꽃을 선물하던 김혜수 (57) 씨는“시청 근처 식당에서 일하다 향로를보고 인사하러 왔어요. 그는 “나는 민주당 원, 노동자, 기타 사회적 약자 투쟁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많은 것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경기도 용인에서 온 이용수 (56) 씨는“30 년 가까이 교육이나 집회장에서 백선생을 만났는데 선생님의 영향을 받아 살고있다”고 말했다. “통일 운동가이자 평화 운동가로 기억합니다. 우리 사회의 거물이 잃은 것 같아요.” 기념 기사는 온라인 기념관에 계속 게시됩니다. 한 시민은“저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성인 교사를 기념합니다. 나는 마음이 나쁘다”고 글을 올렸다. 또 다른 시민은“80 년대 군사 독재를 촛불 집회까지 꾸짖 던 때를 기억한다”고 썼다. 이날까지 온라인 기념관에는 400 개 이상의 기념 기사가 게시되었습니다. 백남준의 추모 열은 해외에서도 계속된다. ‘백기완 씨의 뜻을 계승하는 해외 동포들’이 20 일 (토) 오전 10시 (한국 시간) 화상 회의 플랫폼 ‘줌’에서 추도식을 갖는다. 장필수 강재구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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