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생의 벽에 맞서 싸운 청년 백기완

[앵커]

89 세로 세상을 떠난 백기완은 평생 통일 민주화 운동에 전념했다.

그는 자신을 월 파이터라고 말했습니다.

이승은 기자가 백기완 청년의 삶을 전한다.

[기자]

1932 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백기완은 13 살 때 아버지를 찾아 한국에왔다.

방황하는 동안 이름을 모르는 포터의 한 마디가 그를 잡았다.

[故 백기완 / 2007년 인터뷰 : 나쁜 놈, 있는 놈하고 싸워야지 없는 놈끼리는 암만 싸워봐야 이긴 놈이 없고 진 놈도 없고 승부가 안 나는 법이야 그러더라고.]

백남준은 20 대였던 1950 년대에 나무를 심고 농부와 가난한 사람들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1960 년대 한일 협정 반대 운동, 1970 년대 복원 반대 운동, 7 ~ 80 년대 신 군대 투쟁을 통해 인생의 거리에서 반독재, 민주화, 통일을 외쳤다.

인민 운동 캠프는 그를 두 차례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

1987 년 대선에서 김영삼, 김대중, 김양은 통일을 호소 한 뒤 사임했지만 1992 년에 끝났다.

[오세철 / 연세대 명예교수(2007년 인터뷰) : 단순한 후보 운동이 아니라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기반을 처음 만드는 시발점이 되지 않았느냐.]

고문도 가난도, 무릎을 꿇고 싶은 유혹도 없습니다.

모든 할부금을 내지 않은 딸들을 위해 피아노를 팔아 설립 된 통일 연구원은 생각의 전초 기지였다.

삶의 방향과 한국어를 일깨운 그의 글은 80 년대 운동의 필독서였다.

최근까지 그가 아플 때 그는 항상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에있었습니다.

[故 백기완 / 지난 2019년 인터뷰 : 한 노동자가 죽었는데 그 노동자를 죽인 잘못된 질서, 제도를 나무랄 생각 아니하고…. 죽는 그 순간까지 썩어 문드러진 놈들의 뿌리를 뽑기 위해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원한 청년 백기완이 꿈꾸던 통일 민주화는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세상이었다.

YTN 이승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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