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호의 현문우답]”나는 침팬지를 알고 있지만 인간은 모른다”…

모두가 걱정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하나요.” “내 자신을 어떻게 교육해야합니까?” 우리 대부분은 우리 자신의 삶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자녀에게 일치하도록 요청하십시오. 왜? 나에게는 그것이 ‘정답’인 것 같습니다. 그게 전부인 것 같아서. 하지만 그것이 정말 정답입니까?

노인들은 주입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암기 훈련을 받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나는 주어진 정답에 익숙합니다. 하지만 젊은 세대 나 젊은 세대는 다릅니다. 자신 만의 답을 만들어야하는 세대입니다.

여기에 간격이 있습니다. 부모가받은 교육 방법과 자녀가 받아야하는 교육 방법. 두 사람이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해야하지?” 저는 많은 학자, 현자, 심령 학자들을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그중 ‘자녀 교육’에 대한 독특한 통찰력을 제시 한 세 사람이 있었다. 최재천 이화 여자 대학교 석좌 교수, 김형석 연세대 학교 명예 교수, 기독교 영성 사 이재철 목사.

큰 규모에서는 두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어린이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입니까?” “실생활에 어떻게 적용 할 수 있습니까?” 그들의 대답에는 ‘공통 분모’가있었습니다.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의미가 겹쳤습니다.

# 풍경 1

최재천은 이화 여자 대학교 진화 생물 학자이다. 그는 평생 동식물의 삶을 관찰하고 연구 해 왔습니다. 즉 그는 대자연을 공부하며 살았다. 인간은 실제로 자연의 일부입니다. 인간이 자연에서 떨어져 살 수 있습니까? 그래서 나는 그에게 물었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합니까?”

최 교수는 생물 학자처럼 ‘새’를 예로 들었다. 그는“새가 날아가는 것을 가르치는 광경을 본 적이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어미 새가 아기 새를 가르치는 장면.

Q 어떻게 가르치나요.

“어미 새는 ‘이렇게 날아라’나 ‘그렇게 날아라’라고 말함으로써 새끼 새를 방해하지 않습니다.”

Q 간섭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떻게 가르 칠 수 있습니까?

“여기저기서 어미 새가 ‘흐르는’일뿐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볼 때 따라갑니다.”

Q 아기가 처음부터 태어날 수 있나요? 어떤 병아리가 나무에서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있습니다. 그런 다음 나무에 올라가 공중으로 몸을 던집니다. 서 아프리카의 침팬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이 열매를 끊을 때. 엄마는 아기에게 돌로 돌로 먹는 방법을 보여줍니다.”

Q 그렇다면 침팬지는 무엇을합니까?

“작은 아이가 돌을 집어 들고 반복합니다. 물론 처음부터 잘되지는 않습니다. 견과를 놓은 기초 돌조차 처음에는 평평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과일은 계속 굴러 떨어지고 떨어집니다. 여기서 어미 침팬지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Q 어미 침팬지의 태도는 어떻습니까?

“내 새끼가 제대로하지 않으면 화를 내지 않습니다. 그들은 답답해 보이며 대신 견과류를 부수지도 않습니다. 대신, 당신은 무한한 인내심으로 아기와 함께 있습니다. 옳지 않다는 이유로 아기를 버릴 방법이 없습니다.

# 풍경 2

새와 침팬지가 가르치는 방법을 들었던 기억이납니다. “오, 이것이 자연이 자연을 가르치는 방법입니다.” 사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입니다. 그래서 저는 자연이 가르치는 방식이 가장 자연스러운 교수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터뷰에서 강조하고 싶은 두 가지 요점을 생각해 냈습니다. 하나는 나무에서 떨어지는 새가 날개를 만지작 거리다. 또 하나는 아기 침팬지가 바위에 견과류를 얹으면서 계속 굴러 내리는 장면입니다. 두 장면 모두 아기가 저지른 실수 장면, 시행 착오 장면, 더 깊이 고통의 장면입니다.

그러나 어미 새와 어미 침팬지는 조용히 그것을 지켜 봅니다. 왜 그런 겁니까? 이는 그러한 실수와 시행 착오, 즉 그러한 고통이 전적으로 어린이에게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결정적으로 여기에 갔다. 자연이하는 지점이지만 인간이하는 지점입니다. 자연이하기 때문에 인간도해야 할 일입니다. 자연에서 배울 수있는 교육 방법.

# 풍경 3

최재천 교수는“아름다운 방황과 따스한 방목”은 자녀 교육에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부모는 그것을“쓰레기 = 고통”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내 아이의 삶에서 그것을 없애려고 노력합니다. 최 교수의 대답은 달랐다.

Q 자녀가 방황하는 모습을보고 싶은 부모님이 있나요? 모든 사람이 자녀가 미리 방황하는 것을 막으려 고하지 마십시오.

“학생들에게 특강을 할 기회가있을 때마다 ‘Wander’라고 말해요. 그들은 그냥 방황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열심히 방황하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찾도록 지시합니다.”

Q 이런 경우 부모는 어떻게 대처해야합니까?

“아이들이 방황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그들이 스스로 방황 할 수 있도록 그들을 풀어 줘야합니다. 나는 그것을 방목이라고 부른다.”

Q 아이가 방목하다 절벽에 떨어지면 어떻게 되나요?

“그래서 우리는 방목하지만 따뜻한 방목이 필요합니다. 무작위 방목이 아닙니다.”

Q ‘따뜻한 방목’이란?

“비유로, 약간 더 긴 개 끈이 필요합니다. 길이가 1 미터에 불과한 것은 아닙니다. 아이를 단단히 묶지 말고 넉넉하게 묶고 벼랑 아래로 떨어질 것 같으면 끈을 당기십시오. 관심을 갖고 보지 않는 척하며 항상 옆으로 쳐다보세요.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개를 줄만큼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전혀 수갑을 채우지 않았나요? 방목이 아니라 번식입니다.”

Q 방목보다는 번식을 할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하나요?

“나는 아동 농업을 사업과 비교할 것입니다. 당신이 아이를 낳고 키워서 ‘제품’을 만들어 사회에 발신한다고합시다. 하지만 번식하면 어떻게 되나요? 아무리 잘해도 남들과 비슷한 사람 만 만들 수 있습니다. 원한다면 계속 번식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훌륭한 제품’을 한 번 만들고 싶다면? 방목한다는 뜻입니다. 닭을 기르는 사람은 쫄깃 쫄깃하고 벌레를 좀 먹어도 밖에서 자란 닭은 맛이 굉장하다.”

# 풍경 4

내가 들었 듯이, 열쇠는 ‘고통’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겪을 방황, 즉 그들이 견딜 수있는 고통을 볼 수 있습니까? 이 임계 값을 넘어서려면 자녀 교육에서 ‘고통’이 무엇이며 어떻게 ‘고통’이 기능하는지 정확히 이해해야합니다. 그 사실을 모르면 아기가 날아 다닐 때마다 어미 새가 개입하고, 아기 침팬지가 견과를 갈 때마다 어미가 받침대를 뽑으려고합니다.

Q 대부분의 부모는 자녀가 고통을 겪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뜨거운 주전자를 만진 후 손을 태 웠습니다. 그럼 다신 건드리지 않겠죠? 이때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면 어떻게해야합니까? 나는 스토브 나 장작불에 손을 얹었다. 결국 타 버립니다. 진화론 적 관점에서도 고통은 지구상의 생명체에 필수적입니다.”

Q 진화론 적 관점에서 볼 때 고통이란 무엇입니까?

“지구가 창조 된 이래 자연 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빙하기는 지구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거나 거대한 화산 폭발로 인해 대격변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크든 작든 자연 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 변화는 모든 생명체에 큰 위협이됩니다. 생물이 고통을 느낄 때마다. 내 몸과 내 몸의 틈새 때문이다. 이 고통 속에서 절망이 일어납니다.”

Q 어떤 절망인가?

“생존하려는 절박한 욕망입니다. 예를 들어 강에는 음식이없고 육지에만 음식이 있습니다. 그러면 물고기가 절망적입니다. 땅에 올라가 음식을 먹고 싶어하는 열망입니다. 물고기의 몸과 마음을 꿰뚫는 열망이 결국 진화의 방향을 설정하지 않을까요? 물고기의 지느러미는 땅 위를 걸을 수있는 발로 변합니다.”

# 풍경 5

결국 고통은 열망을 낳고 열망은 우리를 진화시킵니다. 아마도 아동 교육에서 같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가 겪을 한두 가지 고통을 두려워하고 미리 차단하면 어떨까요? 결국 ‘아이들의 진화’를 막을 것인가? 누구보다 자녀의 진화를 원하는 부모가 자녀의 진화를 막는 데 앞장서겠습니다. 세상의 어느 부모가 그것을 원합니까? 하지만 많은 부모들이 그렇게합니다.

더 많이 생각할수록 더 많아집니다. 마당에서 자란 닭이 더 건강합니다. 방적 된 닭이 낳은 알이 더 가치가 있습니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병아리가 가장 먼저 날아갑니다. 우리는 단지 알고 있습니까? 아이가 경험하게 될 시행 착오와 고통은 ‘독’이 아니라 ‘약’이라는 뜻이다. 인터뷰 마지막에 최 교수는“아름다운 방황과 따뜻한 방목”을 반복해서 물었다.

글 = 백성호 종교 기자, 사진 = 권혁재, 사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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